
전국신문언론노동조합 강찬희 기자 | 새로운 공급 대책보다 진행 중인 정비사업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 주택시장 안정의 관건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서울시가 2031년까지 주택 31만 호 착공을 목표로 공급 속도를 높이는 가운데, 서남권에 위치한 양천구의 대규모 정비사업이 서울 주택공급의 핵심 축으로 부상하는 이유다.
양천구에서 현재 추진 중인 도시정비 물량은 총 8만9319세대로, 2031년까지 약 5만7천 호 착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서울 전역 31만 호 공급 목표의 18.4%에 해당하는 규모다.
공급이 가시화된 정비구역 지정 이후(2025년 하반기 기준) 물량은 6만1788세대로, 서울시 전체(약 51만5천세대)의 11.99% 수준이다. 단일 자치구 기준으로는 이례적인 집중도다. 하나의 자치구에 서울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도시정비 물량이 집중돼 있는 것이다.
물량만큼이나 면적 역시 ‘동네 단위’ 범주를 넘어선다. 목동택지개발지구를 중심으로 한 지구단위계획 면적은 약 4.3㎢로, 양천구 전체 면적(17.41㎢)의 24.7%에 달한다. 이는 경기도 산본 신도시(약 4.2㎢)보다 큰 규모로, 서울 안에서 하나의 신도시를 새로 조성하는 것과 다름없는 수준이다.
서울시 전체로 보면, 이는 외곽 신도시를 새로 조성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기존 도심을 내부에서 재편하는 주택 공급 전략이 본격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가용 토지가 줄어든 상황에서 교통·교육·생활 인프라가 이미 갖춰진 지역을 고밀·고품질로 재정비해 공급과 도시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하겠다는 방향이다.
양천구가 서울 도시정비의 중심지로 떠오른 배경에는 목동 신시가지라는 독특한 도시적 유산이 있다. 1980년대 정부는 서울의 주택난 해소를 위해 ‘주택 200만 호 건설계획’을 추진하며 도시 구조의 다핵화를 구상했고, 그 결과물 중 하나가 목동 신시가지였다.
도시계획 측면에서도 목동은 시대를 앞서갔다. 주거지와 학교, 공원, 상업시설을 도보권에 배치한 생활권 구조는 오늘날 서울시가 강조하는 ‘15분 생활도시’ 개념과도 맞닿아 있다. 김수근 등 당대 최고 건축가들이 참여해 단지 간 보행 중심 동선을 구현한 점도 재조명되고 있다. 현재 도시정비사업에서 강조되는 원칙 상당수가 이미 40여 년 전 목동에서 처음 시도됐다.
40여 년이 지난 현재, 목동아파트는 본격적인 재건축 국면에 진입하며 다시 한 번 서울 도시정비의 방향을 시험하는 무대가 되고 있다. 목동·신정동 일대 약 2.28㎢에 걸쳐 조성된 목동아파트는 14개 단지, 2만6629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재건축이 완료되면 기존 대비 1.8배인 4만7438가구로 늘어난다. 순증 물량만 2만800가구로, 단일 생활권 기준으로는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공급 물량이다.
목동 재건축의 가장 큰 특징으로는 ‘속도’가 꼽힌다. 과거에는 정비구역 지정에만 5년 이상이 소요됐으나, 목동아파트는 이를 2년 이내로 단축했다. 지난해 12월 1~3단지를 끝으로 14개 단지 모두 정비구역 지정을 마쳤고, 현재는 조합 설립과 사업시행인가 단계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
이같은 변화는 2023년부터 본격화됐다. 국토교통부의 안전진단 기준 완화가 소급 적용되면서 길이 열렸다. 구조안전성 비율은 낮추고, 적정성 검토는 필수가 아닌 지자체 재량으로 변경됐다. 여기에 20년 넘게 난제로 꼽혔던 ‘목동 1~3단지 종상향’ 문제도 주민들과의 대화·토론을 통해 ‘개방형 녹지(목동 그린웨이)’라는 해법을 찾으면서 재건축 추진에 탄력이 붙었다.
현재 목동 14개 단지는 신탁방식과 조합방식으로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다. 8개 단지가 신탁방식을 채택하고 있으며, 최근 고시된 1·2단지(’26.2.19. 사업시행자 지정 고시)까지 8개 단지(1·2·5·9·10·11·13·14단지) 모두 신탁사 사업시행자 지정을 완료했다. 조합설립 방식으로 추진 중인 6개 단지 중에서도 6단지는 가장 먼저 조합설립을 마쳤고, 3·4·8·12단지는 추진위원회 구성을 완료했다.
업계에서는 입지와 사업성이 검증된 목동 단지의 설계사 선정 경쟁과 시공사 수주전이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되면서 ‘서울 최대규모 정비사업지’ 다운 속도전이 시작됐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목동 14개 단지는 2031년까지 순차적으로 착공에 들어갈 계획이다. 재건축 이후에는 최고 49층 스카이라인과 함께 보행·녹지·스마트기술이 결합된 미래형 주거지로 재편될 예정이다. 대규모 이주 수요에 따른 전월세 시장 영향 등을 고려해 ‘이주 안정화 방안’도 별도로 검토되고 있다.
양천구는 특히 목동 재건축의 진행 과정이 향후 서울 내 대규모 정비사업의 기준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과거 목동 신시가지가 서울 서부권의 주거 지형을 바꿨듯, 이번 변화 역시 자치구 한 곳의 개발사업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서울 도시구조 재편의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주민 체감 측면에서도 파급 범위가 크다. 양천구 주민 네 명 중 한 명 이상이 도시정비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주거환경 개선은 물론이고, 통학, 공원·녹지, 상권 변화까지 일상의 구조 자체가 재편된다. 이는 단순히 새 아파트가 들어서는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의 등굣길, 노년층의 보행 환경, 지역 커뮤니티와 생활 반경까지 바뀌는 구조적 변화다. 도시정비가 ‘삶의 질 정책’으로 인식돼야 하는 이유다.
이기재 양천구청장은 정부의 ‘1·29 도심 주택 공급확대 방안’과 관련해선 최근 SNS를 통해 “주택시장 안정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새로운 공급보다는 현재의 정비사업이 잘 진행되도록 규제를 완화해 사업을 촉진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현재 양천구에서는 총 66개 구역에서 재건축·재개발 등 도시정비사업이 진행 중이다. 구는 신속하고 원활한 사업 추진을 위해 적극적 행정 지원과 주민 간 갈등 조정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