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신문언론노동조합 김성길 기자 | 수원화성은 문화유산을 넘어 수원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다. 정조대왕과 수원사람들의 합작으로 축성의 역사와 의미가 완성되고, 200년 넘게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수원시가 추진하고 있는 ‘2026-2027 수원 방문의 해’ 여정의 첫걸음으로 수원화성 성곽길과 화성행궁을 탐방이 필수적인 이유다.
◇반나절이면 거뜬한 성곽길 추천 코스
수원화성 성곽길은 원하는 곳에서 출발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어디서든 진입과 진출이 가능해 시작점과 종료점을 특정하지 않고 부담 없이 상황에 따라 코스를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 둘레 5.4㎞의 성곽길이 잘 연결돼 있어 반나절이면 둘러볼 수 있고, 주요 시설이나 관광 포인트를 정해 구간을 나눠 돌아보기도 좋다.
창룡문에서 장안문을 지나 화서문까지는 비교적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구간이다. 성곽 안쪽 오래된 마을과 평화로운 자연은 물론 바깥쪽의 새로운 도시 모습이 어우러져 이색적인 매력이 곳곳에 펼쳐진다. 특히 수원화성의 최고 절경으로 꼽히는 용연과 방화수류정, 화홍문 일대를 포함하는 구간이라 인기가 높다. 다만 방화수류정은 내년 말까지 보수공사가 예정돼 있어 정자에 오를 수는 없고, 성곽에서 용연을 내려다보는 것만 가능하다.
오르막길이 불편하다면 평탄한 북수문(화홍문)~화서문 구간만 걸어보는 것도 좋다. 축성 당시부터 ‘평지북성’이라는 이름으로 구분된 이 구간은 남녀노소 누구나 산책할 수 있을 만큼 편안하다. 화홍문~장안문~서북공심돈~화서문 등 다양한 시설물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고,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성곽을 사진에 담는 묘미도 있다.
화서문에서 서장대를 지나 팔달문으로 이어지는 구간은 체력이 필요하다. 팔달산 능선을 따라 성곽이 연결돼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기 때문에 힘들지만 아름다운 풍광이 선물처럼 다가온다. 특히 서쪽으로 오르막이 시작되는 서북각루에서 북동쪽으로 돌아보면 발자취를 따라 구불구불하게 이어지는 성곽이 오랜 세월 흘러온 강물 같은 자태를 드러낸다.
수원화성 성곽은 팔달산을 따라 내려온 뒤 팔달문 부근에서 잠시 끊기는데, 길을 건너 전통시장쪽으로 가면 남수문부터 다시 연결된다. 왁자지껄한 시장 분위기와 맛있는 음식, 활기찬 상인의 소리를 들으며 걷다 보면 어느새 다시 동쪽으로 돌아와 출발점인 창룡문에 도착한다.
수원화성 성곽길 걷기를 기념할 수 있는 스탬프북 프로그램도 있다. 화성행궁, 장안문, 팔달문, 화서문, 화홍문, 남수문, 서장대, 수원전통문화관, 수원화성박물관 등 총 10곳에 각 시설물을 본뜬 스탬프를 찍으면 된다. 인근 안내소에서 스탬프북을 받아 7곳 이상 스탬프를 찍으면 소소한 기념품을 받을 수 있다.
◇알고 보면 쉽고 재밌는 수원화성 성곽 시설
수원화성 성곽을 따라 걷다가 아름다운 풍경이 익숙해지면 특별한 성곽 시설물에 눈길이 멈추기 마련이다. 시설물 이름 뒤에 반복되는 용어 몇 개를 알면 본래의 역할과 의미를 가늠하는 데 도움이 된다.
가장 화려하고 커서 눈에 띄는 것은 단연 ‘문(門)’이다. 수원의 중심부를 둘러싼 수원화성은 사방으로 통하는 성문 4곳과 숨겨진 암문 5곳, 수원천이 들고 나는 수문 2곳 등 총 11개의 문이 있다. 방향에 따라 동문은 창룡문, 서문은 화서문, 남문은 팔달문, 북문은 장안문이다. 도성이었던 서울의 사대문 중에는 터만 남은 곳도 있지만 수원화성의 사대문은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어 더욱 특별하다. 국가의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아 팔달문과 화서문은 보물로 지정됐다. 수원화성의 성문은 직접 걸어볼 수 있는데, 주변에 차로가 설치된 팔달문에는 근접할 수 없는 대신 구조와 규모 및 형태가 비슷한 장안문에서 그 웅장함을 느껴볼 수 있다. 성곽 중간중간 숨겨진 암문은 비밀통로 역할을 하던 곳이니 발견의 즐거움을 찾고,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수원천의 수문인 북수문과 남수문은 아치 모양 수문 등 성곽 건축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기 제격이다.
높은 곳을 의미하는 ‘대(臺)’는 주로 군사적 기능을 위해 높여둔 곳을 의미한다. 팔달산 정상에 있어 수원의 해돋이 명소로 유명한 서장대는 원래 군사지휘소였다. 서장대 위층 처마에 걸린 ‘화성장대’는 정조가 쓴 글씨이고, 정조가 직접 훈련을 주관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넓은 잔디밭을 바라보며 사방이 트여있는 동장대(연무대)는 군사 훈련을 하던 곳이다. 장안문 좌우에 있는 북동적대와 북서적대는 적을 감시하고 공격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설로, 우리나라 성곽 중에는 수원화성에만 있는 유일한 시설로 알려져 있다. 노대(서노대, 동북노대)라는 이름이 붙은 곳은 기계식 활을 쏘던 곳이었다.
‘루(樓)’는 높은 위치에 세운 누각 형태의 건물을 의미한다. 동서남북에 각각 1개씩 휴식을 할 수 있는 각루들은 주위를 조망하며 성곽의 유려한 흐름을 감상하기 좋은 곳에 있으니 꼭 들러보길 권한다. 다른 한자를 사용하는 포루는 군사대기소(鋪樓)나 화포를 설치한 시설(砲樓)에 붙은 이름이다.망루였던 ‘돈(墩)’은 가운데가 비어 있는 공심돈과 불빛과 연기로 신호를 보내던 봉돈이 남아 있다.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하이브리드형 화성행궁
수원화성이 감싸안고 있는 화성행궁에서는 조선 시대로 여행을 떠나볼 수 있다. 조선 왕실의 문화와 숨결, 정조대왕의 사상과 인품을 더듬어 보며 그 가치를 되새기는 공간이다.
화성행궁 입구인 신풍루에서 좌익문과 중양문을 지나 직선으로 연결되는 깊숙한 곳은 행궁의 중심부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심에 있는 것이 봉수당이다. 행궁 내에서 가장 위상이 높은 건물로, 왕이 지나는 길인 어로와 넓은 기단인 월대를 갖췄다.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이 열렸던 그림 속 공간이다. 봉수당 왼쪽에 자리잡은 별채 장락당은 국왕의 침소로 활용됐다.
봉수당 북쪽에 있는 득중정은 정조가 활쏘기를 하고 수원행차 마지막 날 불꽃놀이를 시연한 곳이다. 넓게 개방된 낙남헌은 준공 축하연(낙성연)과 백성들을 위한 양로연 등 연회를 하던 공간이라 벽이 없는 개방형 구조가 특징이다. 낙남헌과 득중정 사이에 있는 노래당은 행사 중간에 왕이 쉬거나 대기하는 곳이자 정조가 은퇴 후 내려와 지내려 한 뜻이 담긴 건물이다. 낙남헌과 노래당은 원형 건물이어서 더욱 특별하다.
신풍루 근처 건물들은 행정과 군사의 영역이다.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객사로 사용하던 우화관이 최근 복원 완료돼 방문객을 맞는다. 객사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게 전시돼 있다. 더 오른쪽으로 가면 영전인 화령전이 나온다. 정조 승하한 이후 추가로 건립된 화령전은 정조의 어진과 문집을 봉안해 놓은 운한각을 중심으로 제례를 위한 공간들을 갖추고 있다.
행궁 안에는 건물만 있지 않다. 자연을 즐길 휴식공간도 만날 수 있다. 행궁 뒤쪽 후원 정자인 미로한정이 있고, 낙남헌과 별주에 복원된 연못이 있어서 잠깐 쉬어가기 좋다. 특히 팔달산 중턱에 자리잡은 미로한정은 행궁과 성곽을 조망하는 포인트다.
별도로 정조 사후인 1801년 건립된 정조의 영전 ‘화령전’이 있다. 정전인 운한각에는 정조의 표준영정을 기반으로 한 어진이 모셔져 있다.
◇정조대왕이 만들고 수원사람이 지킨 수원화성
수원화성은 1794년 1월 착공해 2년9개월만인 1796년 9월에 완공됐다.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됐고, 1997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돼 수원을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할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수원이라는 도시의 출발이자 수원시민의 자긍심의 발로인 수원화성은 효심으로 탄생했다. 정조대왕이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묘를 양주에서 현재 화성의 융릉으로 천도하고자 인근에 있던 읍치를 수원 팔달산 아래로 옮기면서 수원화성을 축성했기 때문이다. 특히 정조는 수원화성 안에 신도시를 만들어 정치상업적 기능과 군사적 기능을 함께 담는 개혁을 시도했다. 정약용의 기술과 채제공의 총괄, 조심태의 지휘 등 조선 문화 중흥기의 역량을 결집해 사통팔달의 계획도시 수원이 만들어진 셈이다.
이후 정조대왕이 만든 수원화성을 지켜온 것은 수원화성에서 삶을 일군 수원사람들이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부서지고 손실되고 허물어진 성곽과 시설을 끊임없이 복원·보수하며 수원의 정체성을 지켜왔다.
수원화성 복원사업은 반세기 전인 1975년 ‘수원성 복원정화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시작됐다. 4년여간 중요 시설을 전면 복원하고, 성벽을 보수하고, 주변을 정비하는 작업이 이뤄졌다. 장안문에서 화서문 사이 공간을 시민에게 돌려준 장안공원도 이때 조성됐다.
이후 1990년대에는 수원화성 성곽잇기 사업을 펼쳤다. 시가지가 들어서며 곳곳이 끊긴 성곽 구간을 다시 잇기 위해 1996년부터 2007년까지 11년간 6개 구간에서 사업이 진행됐다. 이 사업으로 팔달문 주변 304m를 제외한 전 구간이 원래의 모습을 대부분 되찾았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시설물을 복원하는 노력이 더해졌다. 서장대, 여민각, 팔달문, 남수문, 동남각루, 동북포루 등이 제모습을 찾게 됐다. 시설물에 대한 보수공사는 30여회를 넘는다. 화성행궁 역시 수원시가 1989년부터 2024년까지 35년 동안 2단계에 걸쳐 복원사업을 진행해 과거의 모습을 되찾아 방문객을 맞을 수 있게 됐다.
수원시 관계자는 “수원화성 성곽길과 행궁은 전통과 현재가 공존하는 관광도시 수원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명소”라며 “특히 수원화성 축성 230주년을 맞는 올해 더 많은 방문객들이 수원화성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확인하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