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게 만드는 '500원의 마법'…괴산군 '걷기 재테크'가 바꾼 일상

첫 달 인구 9% 참여 ‘열풍’…건강 챙기고 통장 보며 ‘흐뭇’

 

전국신문언론노동조합 김성길 기자 | 충북 괴산군 괴산읍을 가로지르는 동진천 산책로. 따스한 봄볕 아래 가벼운 운동복 차림의 주민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과거 평일 낮 시간대의 산책로가 한적했다면 최근 풍경은 사뭇 다르다. 주민들의 시선은 자꾸만 손에 든 스마트폰으로 향한다. “오늘 7,000보 채우셨어? 난 벌써 500원 벌었네.”

 

“아이고, 조금만 더 걸으면 만 원 채우겠구먼. 이게 재미가 쏠쏠해.”

 

괴산군이 야심 차게 추진 중인 '걷다보니 통장부자' 사업이 군민들의 일상을 바꿔놓고 있다.

 

열풍의 진앙지는 산책로만이 아니다. 어르신들이 즐겨 찾는 게이트볼장은 최근 ‘용돈 버는 재미’까지 더해지며 활기가 넘친다. 게임에 집중해 코트를 이리저리 걷다 보면 어느새 목표치인 7,000보를 훌쩍 넘긴다.

 

운동의 즐거움에 더해진 ‘500원의 보상’은 어르신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성취감을 안겨준다.

 

이희열 씨는 “시니어들이 건강을 위해서 늘 나와서 이렇게 운동을 합니다. 그런데 거기에다가 또 걷다 보니 통장 부자라는 프로그램이 생겨서 돈까지 주니까 동기부여가 더 되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참여의 물결은 청년층으로도 번졌다. 이번 사업을 계기로 지역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자연울림 뛰산’이라는 러닝 동아리를 결성했다. 이들은 퇴근 후 함께 모여 달리거나 걸으며 ‘건강’과 ‘통장’을 동시에 챙긴다.

 

동아리 회장인 정승환 씨는 “단순히 혼자 운동할 때는 금방 지치기도 했는데, 지역화폐 적립금도 있으니 꾸준히 실천하는 동기가 된다”라며 “우리 동네를 함께 뛰며 애향심도 커지고, 적립금으로 음료수를 마시는 재미가 쏠쏠하다”라고 만족감을 표했다.

 

직장인과 공무원들도 예외는 아니다. 점심시간을 활용해 괴산종합운동장 트랙을 돌거나 동진천을 걷는 모습이 일상이 됐다. 짬짬이 걷는 습관이 ‘돈이 되는 재테크’로 인식되면서, 자투리 시간을 활용한 건강 관리가 하나의 문화로 정착된 것이다.

 

괴산군의 이 사업은 단순한 캠페인이 아니다. 하루 7,000보를 걸으면 500원, 한 달 최대 1만 원을 지역화폐(괴산사랑상품권)로 돌려주는 '생활 밀착형 인센티브' 정책이다.

 

도입 첫 달인 지난 2월 기준 괴산군 인구의 약 9%에 달하는 3,423명이 참여할 정도로 반응은 뜨겁다. 이 중 3,000여 명이 목표를 달성해 약 1,700만 원 상당의 지역화폐를 받아 갔다.

 

3월 현재 참여자는 4,000명에 육박하며 인구 대비 참여율 10%를 돌파했다.

 

군 관계자는 “애초 매달 1일부터 20일까지만 운영하려 했으나, 주민들의 성원이 너무 뜨거워 다음 달부터는 한 달 내내 운영하기로 결정했다”라며 “자동 참여 시스템을 도입해 편의성도 대폭 개선했다”고 밝혔다.

 

괴산군이 이토록 '걷기'에 진심인 이유는 절박한 현실 때문이다. 괴산은 전체 인구 중 고령층 비중이 매우 높은 초고령 사회다.

 

노인성 질환으로 인한 의료비와 사회적 비용 증가는 지자체의 큰 숙제였다. 송인헌 괴산군수는 이 지점에서 '예방 중심 행정'을 떠올렸다.

 

송인헌 군수는 “무작정 보조금을 주는 것보다 스스로 건강을 챙길 동기를 부여하다 보니 스스로 건강해지는 것은 물론, 미래를 위한 사회비용도 절감시킬 수 있다”라며 “적은 금액 같아도 수천 명의 소비가 지역 내에서 이뤄지니 상권 활성화에도 도움을 줄 수 있어 군민 모두가 행복해지는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주민들 사이에서는 건강 개선 효과가 입증되고 있다.

 

꾸준히 걷는다는 임옥출 씨는 "돈도 벌고 건강도 챙기자는 마음으로 걷다 보니 통장을 보니까 만 원이 들어왔더라고요. 몸도 한결 가볍고 마음도 건강해졌는데 용돈까지 생겼다"라고 흐뭇해했다.

 

이 사업의 또 다른 묘미는 '경제 선순환'에 있다. 적립된 포인트는 '지역상품권 Chak' 앱과 연계된 괴산사랑카드로 지급된다.

 

걷기로 번 돈이 고스란히 지역 내 마트, 식당, 전통시장에서 소비되는 구조다.

 

군은 군민의 높은 참여와 호응에 맞춰 애초 매달 1일부터 20일까지 운영하던 사업을 4월부터는 1일부터 말일까지로 확대한다.

 

이와 함께 기존 참여자는 다음 달 챌린지 자동 참여 및 참여자 정보 자동 연계 시스템 도입으로 더 쉽고 지속적으로 걷기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개선했다.

 

상인들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괴산 전통시장에서 점포를 운영하는 한 상인은 “어르신들이 '걷기로 번 돈'이라며 자랑하며 물건을 사 가신다”라며 “적은 금액 같아도 수천 명의 소비가 지역 내에서 이뤄지니 상권 활성화에 든든한 보탬이 된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괴산군의 '걷다보니 통장부자'는 지방 소멸과 고령화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지자체가 어떤 창의적인 해법을 내놓을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단순히 돈을 주는 일회성 복지를 넘어, 개인의 건강-지역 경제-공공 재정 건전성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괴산군의 실험은 산책로에서 만난 주민들의 활기찬 발걸음이 해답을 주고 있다.

배너